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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만에 퇴사한 것에 대하여일상 2023. 3. 13. 20:55
오늘은 BGM이 없다. 딱히 어울리는 노래가 생각 안나서.
그래, 퇴사했다. 그것도 2주 만에. 저번 글에서는 잘해보겠다니 해놓고,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다. 나도 어이없다. 첫 직장이고, 취업 준비도 꽤 오래했기 때문에 정말로 관두기 싫었지만, 어디 세상이 마음대로만 됐던가. 그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한번쯤은 나의 읍소를 들어줬으면 한다.
처음부터 그런건 아닙니다
원래는 2월 중순 쯤에 입사 예정이었지만 자격증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었고, 다른 회사들 면접 등, 이것 저것 처리하느라 일주일 뒤에나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첫 사회생활이기도 해서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며칠 전부터 출근 시간에 맞춰서 수면 시간도 맞추고, 옷하고 준비물도 챙기고, 회사 생활 관련 영상, 엑셀 강의 등을 보며 마음을 다졌던 것 같다.
그렇게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내가 맡게 될 업무, 팀원들에 대해 익히고, 회사 메일, 컴퓨터 세팅도 하고,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함께 회식도 하는 등, 나쁘지 않게 지나갔다. 나름 업무 내용 메모도 하고, 노션으로 정리도 하고, 팀장님이 담배 필 때도 따라나가 이것 저것 열심히 질문을 해가며 뭔가 신입사원스러움(?)도 어필했다.
그 후 며칠간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는 업무를 하거나 교육을 받고, 그 외에는 대기하다가 적당히 눈치를 봐가며 칼퇴하기를 반복했다. 다들 바쁜데 혼자 가만히 앉아있는게 무안하긴 했지만, 입사하자마자 나한테 굉장한 일을 시킬 수도 없고, 팀장님이 사수여서 본인 업무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에 납득은 갔다. 그 사이에도 신입사원 대상 교육도 하고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꽤 한산했던 것 같다.
영업관리팀 - 희망편
내가 들어간 회사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물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중소기업이었고, 나는 영업관리팀 소속이 되었다. 영업관리팀은 공장 생산부터 재고, 매출, 출고 등의 관리, 영업 지부와의 소통이 주 업무인 팀이었고, 나는 팀장님을 서포트하여 전반적인 업무 및 관리를 하게 되었다.
팀장님의 첫인상을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와, 전현무'였다. 정말로 전현무씨를 닮으셨는데, 한 30대 중후반으로 보이시는, 훤칠한 분이었다. (알고보니 '정말' 동안이셨다) 굉장히 젠틀하시고 상대를 존중해주는 분이었다. 워낙 친절하게 뭐든 잘 알려주시고, 밥도 많이 사주시고, 일도 굉장히 잘하셔서 '이런 분이 내 상사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은 대기업 등에서 일하다 이 회사로 넘어온 지 1년 정도 되셨는데, 이전 직장에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과로에 싫증이 나 회사를 옮기셨다고 한다. 이 회사에선 돈도, 일도 적당히 하는게 목표였지만 선임들이 줄줄이 퇴사 해버려 자연스레 팀장이 되셨다고 한다. 일을 적당히 하겠다는 마음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하며 웃으실 때는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내가 들어올 당시에는 팀장님도 팀장님이 된 지 1달 정도로, 아직 업무 흐름을 파악하는 단계였다.
팀장님 외에도 내 또래 직원 몇 분, 연차가 있으신 대리님 등이 있었는데, 다들 다 최소 1~2년 이상은 회사를 다닌 사람들이었고, 옆에서 보기만 해도 다들 빠릿빠릿 일 잘하고, 뭔가 여유가 있어보이는 분들이었다. 아직 조금 어색했지만 팀장님이 출장 중일 때는 같이 밥도 먹으러 가고, 단톡에도 초대해주시는 등, 물심양면 나를 팀원으로써 잘 챙겨주셨다.
그렇게 팀장님, 팀원 분들과 함께 소통하고, 나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점점 적응도 하게 되고 이 팀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좋은 사람들하고 회사 생활을 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까지는'.
영업관리팀 - 절망편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여전히 별로 할 일은 없었지만 저번 주에 비해 그래도 내가 도움이 될만한 일이 생겼다. 회사 내 영업관리 회의가 있는데, 출장을 가야하는 일이었다. 이 회의는 매월 본사 및 지점장들이 모두 모여 진행하는 회의로, 대전에서 진행하는 터라 2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가야했다. 나는 운전을 담당했고, 남의 차를 운전해본 경험이 적어 긴장했지만 나름 문제없이 원래 시간에 맞춰 잘 도착하였다.
회의 자체는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나는 신입사원답게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회의 내용을 정리했고, 누가 어디 지점장인지 머리 속으로 맞춰보며 시간을 보냈다. 단순한 수치로 접했을 땐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들을 들어보니 일을 배우며 봤던 숫자와 글자들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정신없이 첫 회의가 진행되었고, 나름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회의를 마치게 되었다. 팀장님과 나는 그래도 7시 전에는 회사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 설레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점장 한 분이 우릴 붙잡았다. 팀장님도 팀장님이 되고, 지점장 중 몇 분도 승진을 했으니 축하하는 자리를 갖자는 것이었다. 마음 속으로는 얼른 집에 가고 싶었지만, 갓 팀장이 된 팀장님과 신입사원인 내가 어찌 거절을 하겠는가. 그래도 팀장님의 '우린 1차만 같이 있다가 바로 갈거에요.'라는 말을 믿고 지점장 몇 분과 함께 고깃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처음엔 재밌었다.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앞으로 업무를 함께할 사이였기에, 좋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팀장님도 '상부상조'라는 마인드 아래 최대한 이들과 친해지려고 했다. 다들 계속 자고 가라는데, 차마 그럴 수는 없어 둘중에 한 사람만 술을 마시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국 팀장님이 술을 마시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 둘 술병을 비워가며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졌다. 연배가 있는 분들이라 자연스레 자식 얘기, 골프, 정치 얘기 등이 오갔고, 서로 '형님 형님' 하며 즐거워하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술대신 콜라를 홀짝였다.
그렇게 훌쩍 시간이 지나가고, 한 분이 흥이 올랐는지 당구를 치러 가자고 하셨다. 이 때 집에 어떻게든 갔어야 하는데, 팀장님은 '30분 뒤, 1시간 뒤에, ㅇㅇ까지만 있다 가죠' 라며 계속 나를 이끌고 그들을 따라가셨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타지에서 술까지 드신 팀장님을 홀로 두고 갈 수도 없고, 상급자들이 있는데 소신껏 얘기하기도 어려웠기에 꾹 참으며 이들을 따라다녔다. 나와 팀장님, 그 사이에 합류한 다른 직원 분은 당구를 칠 줄 몰라 지점장들만 당구를 치러가고, 우린 그들을 기다리며 술 한잔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쯤 아내에게서 걱정이 섞인 문자와 전화가 왔다. 예고없던 회식, 늦은 귀가 때문이었다. 하긴 일한지 얼마나 됐다고 배운 일도 없는데 기약없이 회식 자리에 있는 내 모습이 나도 어이없긴 했다. 그렇지만 소신을 발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에, 초조한 마음을 뒤로하고 아내를 달래가며 얼른 지점장들이 당구를 치고오길 기다렸다.
지점장들이 돌아오고, 2차 장소를 찾아 대전 시내를 방황하듯 걸어나갔다. 팀장님은 이번엔 정말로 다음 술자리에서 인사만 하고 나가자고 하셨고, 나는 그 말이 사실이길 바라며 이들을 뒤쫓아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노래방이었는데, 자세히보니 노래방이 아니라 '노래빠'였다. 불안함은 사장과 지점장들의 대화에서 확신으로 바뀌고 말았다. '몇 명'을 부른다니?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아가씨'란 단어가 나왔을 때, 뭔가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팀장님은 얼른 한 두곡 노래를 부르고 나가자고 하셨지만, 결국 우리가 떠나기도 전에 아가씨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팀장님과 다른 직원분이 그나마 아가씨들과 나를 떨어뜨려 놓으려 했지만, 한 지점장이 집요하게 나를 자꾸 아가씨들 사이로 다시금 앉혔다. 이들은 내가 신혼인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아니 아니까 오히려 그런 식으로 행동한 것이었다. 내가 술을 못 먹으니 어떻게든 괴롭히려고 한 건지, 기선제압을 하려는 건지, 장난기가 발동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잘못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도 다행히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팀장님과 나는 겨우 술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깥 공기를 맡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처지가 서러웠고, 아내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런 취급을 받으며 그 공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화가 났다.
운전대를 잡고, 그 끔찍한 현장에서 겨우 멀어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팀장님에게 말실수를 할까 겁나서 말을 아껴보려 했지만, 결국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팀장님과 대화를 할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이게 사회생활인가?', '팀장님은 왜 이해는 안되지만 존중한다고 하는거지?', '앞으로도 매달 이러면 어쩌지?', '저 사람들은 자식 얘기를 그렇게 해놓고 여기서 이런다고?', '아내 얼굴은 어떻게 봐야하지?', '자꾸 견디라고 하는데, 이걸 왜 견뎌야하는거지?', '아내한테 얘기를 해야할까?', '앞으로 이 회사를 무슨 마음으로 다녀야하는 거지?' 등, 의문이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난잡하게 두드렸지만, 딱히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몸과 마음 모두 지친 상태로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닌건 아닌 겁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내는 내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내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은 다음날 아침에도, 저녁에도 이어졌다. 마치 아내가 나 대신 울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린 행복하기 위해, 우리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인데, 왜 눈물 속을 걸어야하는 걸까. 아마 아내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끈적하게 우리를 붙잡는 기분이 들었다. 닿기만 해도, 냄새를 맡기만 해도 불쾌한 상황이자 감정이었다. '누군가에겐 이러는게 유난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라고도 잠시 생각해봤지만, 아닌건 아닌 것이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 아닌가? 자식 얘기, 부모님 얘기를 하다가 그런 곳에 간다는 것도 이해가 안됐다. 인간의 감정이라고, 본능이라고 뭐든 다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그걸 남에게 강요하다니.
이전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난 아내와 함께 하기 위해 내 평생의 꿈이자 목표였던 음악도 관뒀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런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내가 다니는 직장, 행동으로 아내가 슬퍼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은 먹었지만,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나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기에 망설이고 있을 때, 아내가 먼저 퇴사를 권유했다. 덕분에 미련없이 털어낼 수 있었다.
가끔은 그냥 나쁜일이 생긴다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것은 성추행을 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과 동일했다. 무력감, 공포, 분노, 절망, 패배감, 그리고 우울함... 그 와중에 유튜브에서 위로가 되는 영상을 찾았다.
이 작가 분은 본인이 성폭행을 당한 얘기를 글로 풀어냈는데, 인터뷰에서도 많은 위로의 메세지를 건네준다. 그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건, '자책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은연 중에 '내가 별 스펙이 없어서', '타협해서', '아무데나 가서 벌어진 일', '예상했어야 하는 일' 등으로 자책하고 있었는데, 이 분 말씀대로 생각해보니 내가 자책할 일이 아니었다. 별 스펙이 없으니까,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일을 당해도 된다? 그쪽이 더 어이없지 않은가. 그리 생각하니 감정의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삶은 선택의 연속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과거의 선택을 지고가야하는, 삶의 무게가 생각보다 버겁게 느껴졌을 뿐이다. 취업 준비를 하며 느낀 점도 많았다. 음악 다음 직업으로 선택한 데이터 분석쪽이 알고보니 학력을 많이 따지는 곳이라 서류에서부터 경쟁이 안되고, 문제가 학력인지라 해결법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타협하며 고른 직장에서는 되지도 않는 취급을 받았다. 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다른 직업을 찾자니 그건 그거대로 고민이 된다. 다음으로 선택한 직종, 직장에서도 또 다시 이렇게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그 땐 지금처럼 곧바로 뛰쳐나올 수 있을까? 그렇지만 다음에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지금처럼 명예도, 힘도 없는 곳에서 일하고 싶진 않다. 팀장님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결국 지점장들의 눈치를 보느라 '30분만, 1시간만'이라 말하며 나를 그런 곳까지 이르게 한 것도 사실이니까.
이것 저것 알아보고 있는 건 많다. 데이터 쪽에 대해서는 이번 취준을 계기로 회의감이 많이 들었으니, 원래 관심 있었던 개발자나 엔지니어를 준비해보는게 일단은 1순위인데, IT 관련으로 본인이나 지인 중 아는게 많은 분은 개인적으로 연락해주시면 너무나도 감사할 것 같다. (어쩐지 작년 초에 했던 부탁을 또 하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쓴 이유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삶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한 '회고'가 가장 큰 목적이다. 이번에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큰 일을 겪었기에, 혼자서만 끙끙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글로 옮겨본다. 그래도 글을 쓰며 난잡한 마음이 조금은 정리된 듯 하다. 글을 끝까지 읽어준 여러분에게 감사하단 말 전하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좀 더 좋은 내용으로 찾아뵙고 싶다.
브런치에 동시연재 중 (https://brunch.co.kr/@353ca12432944e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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