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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관뒀습니다.일상 2022. 1. 1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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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다
고등학교 2학년 봄 야자시간, 갑자기 떠오른 악상 때문에 유독 집중이 안됐던 그 날. 문을 박차며 난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꽤 어렸을 때 부터 난 항상 음악을 좋아했다.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고, 초등학교 때 동요 독창대회에 두어번 나가게 되면서 점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전설적인 래퍼의 일대기를 담은 <Notorious B.I.G>라는 영화를 보며 힙합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중학생 무렵까지 작가를 꿈꾸던 평범한 나는, 그렇게 음악이란걸 시작하게 되었다.
입시, 그리고 대학
하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음악으로 대학을 가는 것은 정말 어렵다. 모교인 동아방송예술대의 실용음악과 경쟁률은 매년 몇백대 일을 가볍게 넘는다. 하물며 고등학교 2학년, 늦깎이로 준비를 시작한 나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나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은 동아방송예술대 1기(!) 졸업생이셨는데,(이정, 이영현 등의 분들과 동기였나 그러시다고 했다) 고3이 된 내게 이런 제안을 하셨다.
"음향제작과는 어때? 음악이랑 관련이 있는 분야니까 둘이 같이 할 수 있을거야."
그렇게 나는 음향제작과를 알게 되었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 내가 갈 수 있는 전형은 정시 밖에 없어서 나는 수능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음악을 하기 전에 열심히 공부를 해놔서 수월하게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기준 음향제작과의 정시컷은 국영수 중에 두과목 정도 2등급(상위 11%)을 받아야했다. 수포자였던 나는 열심히 영어와 국어를 공부해서 2등급을 받고, 당당하게 과수석으로 음향제작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교 생활은 즐거웠다. 친구들, 선배들과 함께 음향제작과 생활도 하고, <마인드>라는 흑인음악동아리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동아리에서도 열심히 공연, 술자리 등에 나가며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즐겁게 음악을 하며 소위 '인싸'스럽게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떠올려보면 당시의 나에게는 과분한 멋진 무대도 정말 많이 올랐고, 즐거웠던 기억이다!
남자니까
즐거웠던 시간이 가고 어느새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다. 친구와 동반입대를 지원했지만 연달아 실패. 어느 날은 실수로 아예 모집기한을 놓쳐버렸다. 별 수 없이 친구와 나는 각자 육군 기술병, 해군 이발병을 지원했고, 둘 다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나는 23개월, 700일 동안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리더십도 생기고, 이발이라는 기술도 배우고, 일머리도 꽤 많이 생겼으나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고, 어른이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친구놈이 일주일 먼저 입대 했는데 육군이라 2개월 7일 먼저 전역했을 때 정말 부러웠다...!)
그렇게 남다르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군생활이 끝나고, 내 눈 앞을 가로막은 건 현실이었다. 해군이라 복학 시기를 애매하게 놓친 탓에 5월부터 다음년도 3월까지 시간이 굉장히 비었다. 나는 군생활 때부터 이미 이 시기에 뭘 할지 정해놨다. 그건 바로 '장비 사기'. 군적금을 깨서 스피커를 사는 것을 시작으로, 이 알바 저 알바 해가며 간신히 복학 전에 내가 사고자 했던 장비를 다 구매할 수 있었다. 술취한 손님에게 맞아보기도 하고, 또래 친구들과 처음으로 같이 일해보기도 하고, 두번은 안하겠지만 나름 추억이 된 것 같다.
다시, 시작
내 스무살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학교에 다시 돌아왔다.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지만 굉장히 낯선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후배들이었다. 분명 나는 어딜 가든 막내였는데 돌아와보니 소위 '틀딱', '화석', '고인물'이 되어버린게 웃기면서도 서글펐다. 14학번이 이렇게 고학번이었나...? 싶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정말 고학번 맞다) (덕분에 온갖 과제에서 반강제로 조장이 되버린건 비밀)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안성에 구한 자취방 안에 작업실을 차렸다. 비싼 장비들과 많은 인력(?)들이 있으니 내 집은 곧바로 동아리원들의 녹음실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1년을 학교와 동아리 생활로 보내게 되었다. 매주 주말에는 녹음, 과제를 하며 10시간은 거뜬히 보냈고, 노래도 참 많이 만들었다. 이 때 만들었던 음악들은 여전히 가끔씩 찾아 듣는다. 내가 직접 만든 노래로 첫번째 무대를 서기도 했는데, 그 날의 전율과 기쁨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시기에 함께한 사람들 모두 그 때를 그리워하는 거 보면 다들 나와 비슷한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힘들기도 참 힘들고 정신도 없었지만 되돌아보면 이만큼 순수하게 음악을 한 적도 많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
정신없이 18년도가 지나가고, 음악적 경험이 쌓인 나는 좀 더 큰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건 바로 정식 데뷔. 물론 아직 혼자서 데뷔를 할 만큼의 실력이 아니었기에 팀을 꾸려서 음악을 만들기로 했다. 20살 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던 형과 친구,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 동생까지 한 데 모아 팀을 이뤘다. 나는 거기서 비트메이킹, 보컬, 녹음, 거기에 믹스까지 정말 많은 역할을 했다. 그렇게 해서 2019년 11월 11일, 배드채널의 첫번째 EP <BAD BAD BAD>가 나오고, 데뷔를 하게 되었다. 처음이라 많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경험이 되었고,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어쨌든 내 실력에 비해 훨씬 좋은 음악이 완성되었다.
나의 데뷔곡
아무것도 없는 신인치고 과분하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내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주셨지만 특히 우리를 전혀 모르는 해외에서도 좋다는 반응을 많이 남겨주셔서 신기하고도 감사했다. 이 후에도 이 팬들은 우리가 활동을 함에 있어서 많은 에너지가 되주었다.
그렇게 데뷔를 하고, 팀 형의 솔로 데뷔 음악도 만들고 뮤비 촬영도 돕다보니 어느새 12월이 되고, 그렇게 종강을 하게 되며 내 학교 생활을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후 1월에 '그 질병'이 확산되기 시작하고, 졸업식이 취소되면서 다소 어정쩡하게 졸업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12월에 종강을 하자마자 작업실을 구했다. 지하에 있는 골방이지만, 나 혼자 온전히 갖는 첫번째 작업실이었다. 이 때 학교에서 같이 음악하던 동생도 우리집에 데려와서 이 친구와 함께 작업실로 출근하며 음악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배드채널 다음 앨범, 개인 앨범, 각종 공모전, 팀 작업, 외주 작업, 그리고 레슨에 알바까지 정말 정신없는 1년이었다. 공식 음원 등의 결과물은 딱히 없던 한 해였지만, 역시 많은 걸 배우고 실력이 올라간 한 해였다.
다만 음악하는 현실에 대해서 많이 깨닫기도 했다. 몇십만원 되는 작업실 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게 되었고, 정말 입맛에 안맞는 공모전도 해보고, 레슨과 외주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지만 고생스러운 부분도 꽤 많았기에 골머리를 앓으며 진행했다. 또 이 때 배드채널 외에 이든 트라이브 (Eden Tribe)라는 프로듀싱 팀도 꾸리게 됐는데, 팀원들과 함께 합을 맞춰가며 '팔리는 음악'에 대해 많이 고민 했던 것 같다.
BAD MAX
20년도 내내 준비했던 배드채널의 두번째 EP <BAD MAX>가 2021년 1월 27일 발매되었다.
EP <BAD MAX>의 타이틀곡
전작 <BAD BAD BAD>가 4곡 이었던 것에 비해 곡 수도 6곡으로 늘었고, 개인적으로는 타이틀곡 외 곡들도 생각보다 더 잘 나온 것 같아 만족하는 앨범이다. 뮤직비디오도 좋은 감독님을 만나 멋지게 잘 찍었고 (이 때도 촬영하느라 엄청 고생했다. 뮤비는 항상 힘들다) 결과적으로도 많은 분들이 봐줘서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이 때를 기점으로 회의감도 많이 왔는데, 내가 만든 음악이 '잘 팔리는 음악'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분명 괜찮은 것 같은데 왜 안되지...' 이런 마음은 약간의 열등감,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물론 그 때는 그것 때문에 지치진 않았다. 다만 다음에 어떤 음악을 낼 지, 어떤 식으로 활동할 지에 대한 의문감은 다소 들었던 것 같다.
팀, 가족
<BAD MAX>를 준비하며, 또 직후의 팀 형의 개인 앨범을 준비하게 되며 연이은 작업에 많이 지치게 되었다. 혼자서만 계속 고민을 하다보니 어느새 마음 속에는 팀을 탈퇴해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되어 팀원들을 모아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 지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팀원들은 곧이 곧대로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고, 내가 끌어안고 있던 여러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기로 했다.
그 날 팀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내 친구가 그러더라, 너는 즐기는 게 아니라 의무감에 음악을 하는 것 같다고. 근데 내가 보기엔 너가 나보다 더 그래보인다."
그 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 건가?', '음악 자체에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많은 고민 끝에 나온 답은 간단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 때마침 힙합LE라는, 규모있는 힙합 사이트에서 신인을 뽑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서 참가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원할 때 필요한 '내 음악'이 없었다. 그래서 기존 프로젝트들을 정리하고 '내 음악'부터 만들기로 했다.안개 낀 새벽
그렇게 EP <HAZY DAWN>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사이 사이 배드채널, 이든 트라이브 친구들과 음원도 만들고, 유튜브도 찍고, 위에 생계 유지를 위해 했던 대부분의 일들을 여전히 하고 있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맑아진 상태로 작업을 하니 음원들은 금방 완성되었다. 이후 힙합LE 쪽은 잘되지 않았지만, 기왕 만든 거 조금 더 다듬어서 본격적으로 앨범을 준비하게 되었다. 녹음도 몇 군데 다시 하고, 뮤직비디오도 두 개의 버전으로 촬영하고, 아트워크, 비주얼라이저까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본 것 같다. 이전에 내가 만든 음악들은 완성할 때 쯤 되면 질린 상태라 발매가 되면 막상 나는 잘 듣지 않았는데, <HAZY DAWN> 같은 경우에는 새벽 시간대에 이따금씩 듣는 편이다. 뮤직비디오도 장소 선정 등 공도 많이 들였고, 감독님도 정말 감각있으신 분이라 즐겁게 촬영하고, 결과물도 매우 만족한다. (이 글을 읽는 아티스트 분들 감독님에게 언제든 연락주세요!) instagram @swamp_archives
<HAZY DAWN>의 타이틀곡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나에게는 2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가 있다. 데뷔하기 전부터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다. 내 삶에 정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었고, 특히 음악적으로도 보컬 레슨 등 내가 꿈을 이룰 수 있게 많은 것을 도와줬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실은, 올해 중순이나 하반기에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HAZY DAWN>이 발매되던 시점부터 얘기가 시작됐고, 집 구하기 등 여러가지 현실적인 사항들부터 하나씩 준비하는 단계였다. 그러나 여러 장벽에 부딪혔고, 결국 심사숙고한 끝에 내년 정도로 일정을 미루게 되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시점에 이미 음악 생활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계획이 크게 틀어지게 되니 너무나도 아쉬웠고, 더욱 더 음악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 같다.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내 꿈을 세상에 펼칠 시간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살면서 음악하는 사람을 정말 많이 봐왔지만, 아니 봐왔기 때문에 내가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마지막으로 발매하려고 했던 앨범 <Midnight Essence>를 70% 정도 완성한 상태에서 정리하게 되어 너무나도 아쉽지만, 인연이 있다면 또 길이 있겠지, 싶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요
사실 음악 생활을 더 급하게 끝낸 이유가 있다. <42서울>이라는 프로그래머 육성 프로그램에 1차 합격했기 때문이다. 물론 2차 신청까지는 순전히 운이고, 됐다 쳐도 이 후에 한 달간의 훈련 및 시험을 통해 최종적으로 합격한 사람만 교육을 받는 시스템이지만, 어쨌든 기회가 생긴 김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제발 본과정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여하튼, 음악을 관둔 내가 선택한 다음 직업은 <프로그래머>다. 성격하고 잘 맞을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말이 음악이지 맨날 컴퓨터 다루는게 일이였던 지라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시작은 데이터베이스, 서버 연결 및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백엔드 엔지니어>부터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응원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아시는 개발자 분 있으면 소개 부탁드려요!!!)
OUTRO, 그리고 INTRO
저번주 화요일에 작업실에서 짐을 뺀 후로, 집에서 42서울과 프로그래머 관련 공부도 하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못보던 사람들도 만나고 하고 있다. 어느 날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문득 그런 평범한 일상이 낯설면서도 기분 좋게 마음 속을 간질였다. '음악 생활을 하며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었구나' 싶었다.
앞으로 또 다른 파도가 내게 밀려온다면, 그 때는 허우적거리지 말고, 그 위에 올라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긴 글을 못참는 그대들을 위한, 3줄 요약
1.음악 10년 넘게 열심히 했는데,
2.이거로 먹고 살기에는 너무 힘든 것 같아서
3.프로그래머 준비를 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블로그를 통해 제 삶도 나누고, 개발자로서 블로그도 간간히 올릴 예정이니
잊을만 할 때, 가끔씩 찾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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